김병구 초대개인전

                              <축적의 시간>

노인의 얼굴에 깊게 새겨진 주름과 거칠어진 손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시간의 훈장이다
하늘을 향해 거칠 것 없이 펼쳐 올라간 고목 그 표피에는 겹겹이 쌓인 갑옷이 세월을 품고 있다
안과 밖의 경계를 구분 짓는 오래된 담장과 거칠게 색칠된 철문에는 과거와 현재가 겹쳐 있는 흔적들로 얼룩져 있다

이러한 흔적들에서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순환원리와 같은 표상들과 마주하게 된다

한 시대를 살아간 흔적 위로 다른 시간이 쌓이고 겹쳐지는 것에서 시간의 연속성이 읽혀지고 소멸과 생성의 순환을 성찰하게 되었을 때, 나의 회화작업에 틀이 형성되었다
나의 회화는 자연이 항상 변화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처럼 시간의 점들을 모아서 노동으로 세월을 쌓아올리는 작업이다 
그것은 일련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공존의 관계에서 건져 올린 정신적 산물을 
 조형화 시키는 작업이다

작업의 과정은 캔버스에 다양한 색상을 겹쳐 칠하면서 진행되는데 칠해진 색상위에 안료를 혼합한 색채를 나이프로 떠서 겹겹이 쌓아 올린다
그렇게 반복된 행위에서 색상의 소멸과 생성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물리적 과정이며 마침내 세월이 만들어낸 지층처럼 물성이 창출한 조형미를 얻게 된 다

작품의 주제는 시간이 축적되고 세월이 각인된 흔적을 쌓은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밑에 있는 것 일수록 과거이며 겹쳐진 시간의 흔적들은 조작할 수 없는 체취와 같다
먼 조상들이 척박한 지형에 구축해 놓은 유적지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치유의 유물이 되듯이 시간을 혼재시킨 작업의 결과물이 감정을 치유하는 회화로 자리매김 하길 기대한다

시각적 조형언어인 회화는 아름다움이라는 명제를 개념적인 논리로 추출하는 작업이다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지점에서 경험 속에서 뿌려진 점들, 그 것과 질료가 융합되어 하나의 창작물로 생명력을 얻게 될 때 내 회화의 가능성이 더 확장되리라 믿는다